부산해조음 2008. 4. 20. 23:01
 

진안 마이산(685m)


산행일 : 2008. 04. 19. 토. 맑음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참가자 : 푸른산악회원

산행로 : 강정들머리(11:30) - 보흥사(11:50) - 안부(12:10) - 고금당(13:35) - 비룡대(14:00) - 탑사(15:15) - 은수사 - 북부주차장(16:30)  5시간(산행 4시간)



  지난 3월 8일 구봉산 정상에서 안개속에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되면 꼭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었던 마이산!  마이산의 기이한 모습과 함께 인간의 힘으로 쌓아올렸으나 도저히 믿기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수많은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를 찾아가는 길은 흥분을 느낀다.

  주중에 며칠 비가내리다가 주말을 앞두고는 화창하게 개어 마음을 가볍게 한다. 마이산의 벚꽃 만개시기와 맞아서인지 산악회원이 버스 두 대를 채운다.

  11:30분 마이산을 지나쳐 산행들머리인 보흥사 입구에 도착한다.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약간 있으나 기온이 높아 더운 편이다. 강정마을 입구의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를 지나 포장된 길을 따라 보흥사로 향한다. 약 20여분후 보흥사에 닿는다. 대웅전만 남아있는 보흥사를 왼쪽으로 돌아 본격적인 산행로로 접어든다. 완만한 계곡을 따르다가 약 10분후에 철제 난간이 설치된 암벽을 만난다. 경사가 심해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힘들게 암벽구간을 올라서면 함미산성과 광대봉을 거쳐 오는 종주길과 만난다. 왼쪽으로는 광대봉의 모습이 보이고  광대봉 암벽을 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산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광대봉 정상부근에는 내려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광대봉에서의 조망이 좋다고 하여 가볼까 했지만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보고는 그냥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간다.

  다시 10분후 처음으로 마이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선다. 동쪽 방향 정면으로 암마이봉이 뚜렷이 보이고 암마이봉과 겹쳐져 뒤로 숨은 숫마이봉의 정상부분도 보인다. 약간 북쪽으로는 진행해야할 능선이 연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신록의 모습으로 누워있다. 멀리 중간쯤엔 비룡대의 모습이 우뚝 솟아 보이고 그 너머로 삿갓봉이 눈을 잡는다. 전체적으로 야트막한 산세지만 거대한 암릉구간과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어울려 장중한 조망을 선사한다. 전망대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고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내려간다. 밧줄구간이 나타나고 내리막 경사가 심하다.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듯 내려섰다가 다시 오름길을 올라간다. 날씨가 무척 더워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앞쪽에 보이는 암봉을 언제 올라가나 싶었는데 중간부분에서 옆으로 평탄한 길을 애돌아 간다. 이곳부터 고금당 나옹암까지는 대부분 완만하거나 평탄한 등로이어서 호젓한 숲길을 걷는 듯 하다.

  햇빛을 받아 금빛 지붕이 반짝이는 고금당 나옹암의 모습은 528봉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고금당에 들어서니 처마아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비룡대의 모습이 바로 눈앞인 듯 가깝게 다가오고 숫마이봉을 뒤로 감추고 서 있는 암마이봉만 볼 수 있다. 저 아래쪽으로는 역시 지붕을 금빛으로 칠한 금당사의 모습과 남부주차장, 탑영재의 모습과 길을 따라 환하게 핀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금당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가 다시 한차례 급한 경사를 따라 오르니 거대한 암벽과 40m에 이르는 철계단이 앞을 막아선다. 철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비룡대 누각이다. 누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며 주변 경치에 취해있다. 사방이 막힘이 없어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고 시원하다. 전신의 땀이 시원하게 날아간다.

비룡대를 내려서 급경사 비탈을 내려서고 다시 몇차례 오르내려 무덤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왼쪽은 바로 북부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직진 방향이 탑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곳에서 오던길을 되집어 가듯 북쪽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삿갓봉으로 가는 길이다. 10여분쯤 가면 삿갓봉이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북쪽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이다. 오늘 계획구간에는 들어있지 않은 구간이라 혼자서 찾아 보았다. 조망후 다시 무덤 삼거리로 내려와 탑사방향으로 올라간다. 봉두봉의 휴게시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암마이봉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탑사로 내려서니 마이산과 탑사를 찾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마이산 탑사에 대한 소개는 마이산 탑사 공식 홈페이지(http://www.maisantapsa.co.kr/)에 올라있는 글로  대신한다.

  「수박크기의 돌덩이에서 부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얹어 크고 작은 외줄 돌탑을 80여개 쌓아 만든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

높이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 접착제를 쓴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년의 풍상속에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덕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보기드문 불가사의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신비로운 얘기는 1백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상단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한 탑이다.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석탑들이 1백여년의 풍상을 하나같이 지켜오고 있는것은 정녕 부처님만이 아실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이 불가사의에 더하여 마이산탑사에는 또하나의 신비가 있다. 바로 역고드름이다. 겨울에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에서 고드름이 뻗쳐 오른다. 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릇속에는 이처사가 쓴 신서가 박힌다. 이 신서는 이처사가 신의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형태도 있으며 30여권의 책에 전해 내려온다. 사적비에는 언젠가 이 글을 해독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없다.」


  또한 마이산에 얽힌 전설에 대하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 나라에서 쫏겨난 한 산신 부부 내외가 이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다. 이때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말했다.

 "이제 하늘 나라로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소.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자시11시~01시)을 택해 승천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한밤중은 너무 무섭습니다. 게다가 밤중에 일을 치르자면 너무 피곤합니다. 그러니 푹 자고나서 이른 새벽에 올라가십시다.누가 꼭두 새벽에 잠 안자고 우리들이 승천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겠습니까? 남편 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라 불안 했지만 이튿날 새벽에 승천하기로 마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마을의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화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 댔다.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 차고는 두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수마이봉(해발 673m)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암마이봉(667m)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런 내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빗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천길이 되는 데

연기와 안개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일을 생각하도다.

          -김종직(성종때의 성리학자)

 

  탑사의 아름다움과 기이함에 흠뻑 빠져 한시간여를 보내다가 은수사를 거쳐 긴 나무계단을 넘어 두 봉우리가 만나는 안부에 올라선다. 무분별한 탐방으로 심하게 훼손된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탐방을 2014년까지 제한하여 오를 수 없는 정상은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숫마이봉의 화엄굴을 탐방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 북부주차장에 도착해 시원한 물로 세족을 하고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한켠에 마련된 세족시설은 다른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로서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마이산 산행은 올망졸망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들과 암봉의 정상에서 감상하는 주위의 조망 그리고 산행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모습이 매력적이며 특히 불가사의한 80여개의 탑들이 신비스러운 탑사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멋진 산행이었다.